토끼바위
- 작성일
- 2015.12.14 14:58
- 등록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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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바위 전설
청계면 월선리에 가면 수정동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수정동은 산비탈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이십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척박한 산중 분지에 뿌리를 내린 마을이지만 집집마다 곡식을 풍성히 거두어 넘치도록 창고에 쟁여 놓고 살기 때문에 다른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재 너머에 있는 사찰인 법천사 스님이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에 찾아가서 시주해 줄 것을 청했는데 부잣집 주인영감은 화를 버럭 내며 “요새 중놈들은 염치도 없어. 중이라는 핑계로 젊은 놈들이 게을러서 그 넓은 사전(寺田),사답(寺畓)은 황무지가 되도록 묵혀 놓고 농민들이 피땀 흘려 농사지어 놓은 곡식만 구걸하다니 고얀 것들!”
호령을 하며 시주 그릇을 뺏더니 측간으로 들어가 더러운 인분을 가득 채워 팽개쳐 버렸습니다. 스님의 시주그릇은 말할 필요 없음은 물론이고, 장삼과 바랑에까지 구린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스님은 갑작스러운 일에 어이없이 당하고 말았지만 부아가 치밀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님 된 입장에서 싸울 수도 없고 하여 눈물을 머금고 마을을 빠져 나와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앞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으로 올라가며 관세음보살을 수없이 외웠지만 상처 난 마음은 치유할 길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인정머리라곤 하나도 없는 고약한 사람이 무슨 복으로 저리 살꼬?’ 풍수지리에 밝은 스님은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 사위를 살펴보았습니다. 건너편 잔솔이 우거진 산등성이에 토끼 형상을 한 우람한 바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위를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하늘을 향해 치켜든 쫑긋한 두 귀는 틀림없는 토끼 형상이었습니다. 그 토끼 형상의 바위는 수정동 마을을 향해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옳아 이 마을이 잘 사는 것은 마을을 향해 있는 토끼바위의 정기를 받기 때문이로구나!’ 스님은 산을 내려와 구린내 나는 시주 그릇과 장삼을 산골물에 몇 번이고 씻고 또 씻었지만 역한 냄새를 전부 세탁할 수는 없었습니다. 스님은 구린내 때문에 절에 들어가서도 합숙하는 승방에는 들지 못하고 헛간 짚무더기에서 홀로 새우잠을 자야 했습니다. 대자대비의 마음을 빌려 당한 일들을 모두 잊어버리게 해달라고 염불을 수없이 외웠건만 마음은 더욱 굳어만 갔습니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 그냥 지나면 내가 병이 나지” 스님은 날이 밝자 큰 망치와 정을 챙겨 토끼바위 뒤에 숨겨놓은 후 또 부잣집을 찾았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지만 대문은 열려있었고 하인 무리들이 분주하게 마당을 쓸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목탁을 치고 염불을 외며 시주를 청하자 봉창 문을 열고서 보고 있던 부자 영감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고얀 것! 어제 알아듣게 일렀거늘 오늘은 재수 없게 이른 아침부터 지랄을 하는구나. 여~봐라 장쇠야! 돌쇠야! 이 중놈이 정신 차리게 매우 쳐서 내보내라.” “땡추 중놈이 뱃장도 좋구나. 어저께 그런 능욕을 당했으면 절간에 틀어박혀 참선이나 할일이지 아침부터 우리에게 수고를 끼치게 해.” “이 중놈아 천하 장쇠 몽둥이 맛 좀 보고, 개과천선(改過遷善) 이나 해라.” 스님은 기운 센 하인들 몽둥이에 실컷 얻어맞고 기절한 채 밖으로 내 동댕이쳐졌습니다. 스님이 정신이 들어 살펴보니, 몸에서는 장밋빛 피가 장삼을 붉게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막대기를 주워 짚고 녹초가 된 몸을 의지한 채 천신만고 끝에 토끼바위산 위에 올라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끙끙 앓다가 밤을 맞았습니다. 온 종일 밥 한 숟갈 입에 대지 못했으나 마치 바랑에 시주미가 있어 그것으로 시장기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 사위가 어두워지자 스님은 숨겨 놓았던 정과 해머를 꺼내 토끼바위의 두 귀 중 한쪽 귀를 부숴버리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후부터 마을은 차차 기울기 시작하여 한 가구, 두 가구, 마을을 떠나버리고 지금은 후덕한 인심을 가진 세 가구만 남아 쓸쓸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수정동 앞산 토끼바위에 오르면 스님이 부숴버렸던 한쪽 귀의 파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