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행 - (삼강문과 비) 진주강씨삼강비
- 작성일
- 2015.12.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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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신 박신 박신은 박익경의 현손으로 1530년(중종 25년)에 태어나 학문이 뛰어나고 기상이 늠름하여 일찍 병서에 능하였다. 임진왜란때 부장으로 의병과 군량과 장비를 모아 김천일장군 막하에서 군사기밀에 참여하였고 수성독산의 예성에 이르러 대내의 적을 베어 군기를 확립하고 한산, 정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는 이 충무공을 따라 해전에 참여하였다가 사천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순국하여 이조참의에 증직되고 선무1등훈에 기록되었다.
(2) 효자 박종찬 박종찬은 1762년(영조 38년)에 효성을 지니고 태어나 한번도 부모님께 근심을 끼치지 않았다. 생전시의 봉양과 시약은 할말이 없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어찌나 슬피 울고 있을 뿐 장사지낼 생각을 않자 솔개가 삼막대를 물어다가 땅에 떨처주어 모두가 이곳이 명당이라하여 이곳에 장사지내고 그 옆에 집을 지어 효성을 다 하였다. 집 주의에 버드나무와 향나무를 심으니 마을 사람들이 유라처사라고 불렀다. 또한 공은 이도암 선생에게서 학문을 넓히고 승지에 증직 되었다.
(3) 열부 나주 정씨 열부 정씨는 통사랑 정두극의 따님으로 효자 박종찬의 손자인 박연명의 아내가 된 몇해 안되어 남편의 병이 악화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리는 등의 정성도 효혐이 없어 세상을 뜨니 슬하에 한 점의 혈육도 없는 부인의 막막한 마음으로 남편을 따르려 하였으나 주위의 만류로 마음을 고쳐 조카 승재를 양자로 삼고 시모의 병환에도 허벅지 살을 떼어 드리는 효성을 다했으니 이 부인의 높고 깊은 덕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현경면 현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