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내용 바로가기

충의 - 배병구

작성일
2015.12.10 17:20
등록자
관리자
조회수
935

자는 성채, 호는 성암이요 본관은 달성이다.(1883년 5월23일~1967년 10월28일) 무열공 휘 현경의 32세손으로 천성이 강직하고 지행이 불군하여 의표가 단아하였다.
일언반사까지도 성현의 말씀으로 시작하여 일동일정이 학행일치하였다. 민제 전우선생의 문에 일찍이 들어 학문을 닦고 민제 박선생 추당 김선생 양선생을 향사로 모시며 최면암 기송사 양선생의 문에 들어 제세경론의 대의를 문하고 론을 받았다. 망국의 비운을 당하여 면암 최선생의 비명에 가신 한을 당하시면서 일생동안 못 잊는 한으로 사무쳤다.
단발령에 항거하면서 왜정의 침략식민지교육에 맞서는 길은 한학교육으로 후학을 일깨우는 것이 국권을 찾는 길이라고 믿고 학자로서 유학교육에 전력하니 청아한 학문을 흠모하여 각지의 문도가 진문하였고 그 문인중에는 저명한 인사가 많이 배출되었다.
그 당시 일향에서는 도학에 정규벙 언어에 배병구 문학에 박비경 예문에 김재열로 통칭하리만큼 주위의 선망을 받았으며 1925년에 간행한 면성지를 편찬할때에 문묘와 산천조 등 지의 내용을 더욱 해박하게 정리한 점을 확인할 수 있고 성암유고와 필적만으로도 선생의 학문의 경지를 뒷사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만년에 제자들과 종중에서 남성정사를 창건하여 선생의 강학지소로 삼아 보존하고 있다.

담당부서
관광과
061-450-5474
  • 조회수 396,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