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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 - 노일상

작성일
2015.12.10 17:00
등록자
관리자
조회수
993

노공의 자는 군화요, 호는 경당인데 분관은 함평으로 1842년(헌종 8년)에 해재면 신사리에서 악은공 노신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노공을 분만할 때 노공의 모친 꿈에 어떤 노인이 학생 수십명을 데리고 나타나 나는 송우암이라 하며 옥패를 주고가는 꿈을 꾸고 공을 낳으니 재주가 뛰어나고 말을 배울 때부터 천자문을 입에서 떨어지지 않더니 11세 때에 해라는 제목으로 “구름밖으로 참빛을 토해내니 문명이 천지에 가득하다.”(운외토진광문명일천지)라는 시를 지어 스승을 놀라게 하였다.
또 장성하여 송연제 으름은 병선 선생에게서 학문의 큰 도를 깨치니 연제 선생께서 경당이라는 호를 내리었다.
그 후 김동해(이름은 훈)의 문집성서와 지도 두류산(이화선, 기노사, 김중암, 최면암) 4현의 위패 봉안등에 현노하고 그 곁에 중암유촉이란 네 글자를 돌에 새기었다.
경술합방으로 송연제 선생이 자결하였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슬픔에 젖은 조의를 표하고 심상 (마음으로 복을 비는 것) 3년을 지내고 고종 황제 빈천(임금이 돌아가신 뜻)에도 뒷산에 단을 베풀고 북녘을 향해 슬피 울었다.
공은 오직 학문과 도학으로 일관하면서 후세를 기르니 이 고장의 문품이 노경당 공으로부터 크게 열렸다고 한다.
공이 남긴 저서 중에는 유고 외에 사례요람과 채기신편과 송록정요가 있고 을미사변 후에 지은 마양록은 우분강내의 기상이 담겨 있다. 공이 타계한 후 문인들이 기적 비각을 세워 추모했고, 1971년에 향론에 따라 학산사에 배향하고 유림이 제사를 받들고 있다. <해제면 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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