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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 - 여은군 송상후

작성일
2015.12.10 16:51
등록자
관리자
조회수
993

여은군은 여산송씨 여산군 익손의 5세손으로 1700년(숙종 26년)에 여완군 계주와 정부인 광산김씨의 사이에 무안읍 고절리에서 태어나 증조부, 조부, 부친의 3대와 증조모, 조모, 어머님을 이품으로부터 삼품의 벼슬을 추서케한 분이다.

여은군은 일찍 학문에 잠겨 아량과 가정지학이 있었고 여러 번 가르치치 않아도 자력으로 옛 성현들의 정취를 탐구하고 성리의 맛을 구경하고 더듬으며 몸가짐이 의연하고 덕성스러운 그릇을 크게 이루었으며 마음이 선량하고 행동이 얌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사에도 뛰어나고 또 글씨에도 정밀하였다.
그리고 옛 사람을 좋아하고 의리에 강하여 일반 세속에 섞여들지 않았으며 젊었을 때 부모의 명으로 대과와 소과에 여러 번 응시 하였으나 합격의 영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여은군에게서 제자들이 셋이나 문과에 합격하게 되어 여은군의 학문을 높이 찬양하게 되었고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조정에 천거하니 영조대왕 44년인 공의 나이 69세때에 임금께서 공을 불러 통정첨지 중추부사의 직책을 주고 일을 시키니 매사가 정밀하고 빈틈이없었으며 또한 당시 당쟁을 없애기 위하여 탕평책을 쓰고있는 때라 공은 어느 당파에도 가담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국가의 장래만을 위하여 그동안 쌓은 학문의 덕을 베푸니 영조대왕께서 가상히 여겨 2년 뒤인 공의 나이 71세때에 특별한 은혜로 가선동지 중추부사에 승급시키고 이어서 여운균에 봉하니 법전의 추은례(자식이 훌륭하면 그 부모에게도 그에 상당하는 직함을 내리는 예)에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 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의 3대에 까지 2품, 3품의 직함이 추서되어 그 부친 계주는 중훈대부사 옹원직장에서 가선대부 호조참판 여완군으로 증직되고 어머님은 정부인으로 승격되는등 가문이 일약 빛을 내게 되니 각향 각지에서 이 소식을 듣고 찬탄하면서 “허참! 송 아무개는 웃는듯한 모습으로 자립하여 그 부모와 저부모 그리고 증조부를 빛나게 들쳐내니 뉘라서 효자라고 하지 않겠는가! 숨어 있으되 마음을 허황하게 갖지 않고 세상에 나가되 분수를 지키는 자에게 하늘이 그 공을 갚아주는 것이라” 하더니 여은군에서 증험이 나타났다고 그를 추앙해 마지 않았다.

그 이듬해인 72세때에 직책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오니 그를 아는 많은 선비들이이별을 슬퍼하며 시오 글로써 송별의 뜻을 아쉬워 하였고 한강변에까지 나오 전송하는 자가 수백명이었다고 하니 비록 벼슬은 여러 해 동안 하지 않았으나 평소에 쌓은 덕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영조대왕이 80세때에 여운군이 74세였는데 늙은이를 우대하는 국가적 서훈이 있어 가의대부로 되고 해마나 과록(벼슬의 품계에 따라 주는 월급)을 나라로부터 보내왔고 봄과 가을 두 차례에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관리의 문안이 떨어지지않고 계속하니 조정의 소식이나 서울의 소식을 모르는 날이 없이 지냈다 한다.

1776년 3월에 영조대왕이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니 여운군께서 어찌나 애통해 하였던지 그만 이로 인하여 병을 얻어 그 달 20일에 세상을 뜨니 그 때 나이 77세였다. 요즈음 여은군을 가르쳐 정직한 자가 대접받고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복이 오는 교훈을 남겼다고 한다. <무안읍 고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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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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