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 - 김적
- 작성일
- 2015.12.10 16:26
- 등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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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인 호를 추암이라 한다. 문충공 대경의 칠대손으로 서기 1545년(인종 원년 을사)에 이른바 사화가 일어나자 영달의 뜻을 버리고 권 귀의 문을 멀리 하였다.
청현으로써 공을 유혹하였지만 일체 사절하고 임천에 숨어 오로지 학문에만 전력하였다.
명종초 홍문관전한을 배하고 나아가 김제를 다스리게 되었다. 서기 1555년(명종 10년 을묘) 5월에 왜적이 70여척의 병선으로 죽도원양진 (금 해남남창)에 침입하여 절도사 원적, 장흥 부사 한 온, 영암군수 이덕견 등을 살해하고 가리진 장흥 강진 등 도읍을 공파하여 영암에 이르니 조정에서는 전주부윤 이윤경을 전라도순찰사에 임명하고 이를 토벌케 하였다.
이에 공은 순찰사의 중군이 되어 분전 끝에 적을 대파하여 대공을 세웠다.
광주목사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후진 교도에 여생을 마치니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숙종조때 향리 사창에 사우를 세워 향내유림향사로 거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