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내용 바로가기

백학산

작성일
2015.12.14 15:06
등록자
관리자
조회수
2653

- 백학산의 전설 내용

백학산은 무안군 해제면 소재지에서 약 7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해제면 대사리 백학마을 뒤에 병풍처럼 우뚝 솟아있는 산입니다. 102m의 정상에 오르면 초록빛 칠산 앞 바다가 시원스레 한 눈에 펼쳐 보여 그 풍치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이 백학산에는 다름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고려말엽 고(高)씨라는 속성(俗性)을 가진 명승이 상좌 여섯 명을 거느리고 이 산에 올라와 백림사(白林寺)라는 사찰이 창건하였습니다. 대사는 주야로 불공을 드리고 한편으로는 동굴을 뚫는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동굴을 완성한 후 20여척 안에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 참선정진(參禪精進)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굴이 두 갈래로 갈라졌는데, 한 갈래는 바다로 향해 뻗어 있어, 수중용왕(水中龍王)님께 가는 굴이고, 또 한 갈래의 굴은 용자(龍子)가 내왕할 수 있도록 파놓은 길이었다고 합니다.

절을 세운 지 몇 년이 지난 후로 이 지방에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가뭄이 계속 되었습니다. 밭곡식과 농작물은 처참하게 말라버리고 개울물도, 저수지도 거북등처럼 짝짝 갈라진지 이미 네 해가 지났습니다. 굶다 굶다 못해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던 씨 곡식마저 끓여 먹은 사람들은 이것도 바닥나자 초근목피(草根木皮)로 그날그날을 간신히 연명해갔습니다. 그런데도 대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굴 속에 들어앉아 오로지 수도에만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농민들은 애타게 비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자 “아무래도 봉대산에 어떤 것들이 무덤을 몰래 암장(暗葬)했는가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가물 수 있나?” “명산 봉우리에 암매장한 게 틀림없어, 우리 모두 한발로 죽기 전에 암매장한 무덤을 찾아내 파묘(破墓)하고 기우제를 지냅시다!” 마을 사람들이 봉대산 봉우리에 삽, 괭이, 호미 등속을 들고 올라가 암장한 묘들을 찾아내 파묘한 후 마을연장자 중 제관을 선출하여 제사를 봉행토록 하였습니다. 기우제(祈雨祭)를 드리며 천지신명께 간절히 기원 하였으나 이 모든 것이 허사였습니다. 날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살아있는 사람도 부황(浮黃)으로 얼굴이 부어 간신히 활동하였습니다.

하루는 부락 노인 한 분이 대사를 찾아와 “대사님 날마다 굶어 죽는 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굶어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사님 자비를 베푸셔서 비가 오 시게 불공을 드려 주시옵소서. 부처님의 자비로 하루 속히 단비가 내려 기갈을 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무릎을 꿇고 울면서 빌었습니다. 노인의 간곡한 당부에 대사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중 용왕굴에 들어가 목탁을 치며 염불을 소리 높여 외웠습니다. 한동안 염불을 외우자 구름 한점 없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모여들고 천둥소리가 온 천지를 진동하더니 장대 같은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야! 비다, 소나기다!” 노인은 대사에게 사례를 수없이 한 후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생기가 돌아 덩실덩실 춤을 추며 전답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뒤 또 극심한 한발이 들었습니다. 가뭄이 계속되자 노인은 또 대사를 찾아와 다시 한번 비가 내리도록 해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사는 “이제는 안 됩니다. 지난번에도 옥황상제님께서는 크게 노하셔서 저 희들이 벌을 받았습니다. 옥황상제님께서 하시는 섭리대로 우리 인 간은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고 노인을 돌려보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대사는 사자들을 모아놓고 “이제는 도를 다 깨우쳤으니 하산을 해야겠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중들이 죽음을 당하는 세상이 올 터이니 너희들은 초야에 묻혀 조용 히 살아야한다.” 하고 자신은 백학이 되어 목화송이 같은 흰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이 산을 백학산(白鶴山)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백학산에 올라가 백림사를 찾아보아도 절의 자취는 찾을 길 없으나 백학대사가 수도했던 굴이 지금도 남아 있고, 굴 안으로 들어가면 앉아서 참선하면서 썼던 반석(盤石)과 장서를 보관했던 돌 선반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랗게 이끼 낀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담당부서
관광과
061-450-5474
  • 조회수 145,571